[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선을넘는몫소리 편
- 실행기간: 2023.11.15. ~ 2023.12.31.
- 작성자: 빠띠워킹이
- 작성일: 2023.11.15. 16:06
- 조회수: 382
<선을넘는몫소리>는 대한민국 사회에 버젓이 존재하나 그 마땅한 '몫'을 누리지 못하는 주제 혹은 주체에 주목하는 세 팀으로 이루어진 크루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 <그럼에도 우리는>을 시작하며 '성평등' 담론의 저변을 넓히고자 했던 빠띠에게는 '이주여성'이라는 주제/주체를 제안한 ‘선을넘는몫소리’가 내심 반가웠다. 일주일 전 <그럼에도 우리는> 활동의 결실인 이주여성 사람책도서관 <당신의 세계로 데려다주세요>를 무사히 마친 선을넘는몫소리 팀원 주연과 동찬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이나영책방'에서 만났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올해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
<그럼에도 우리는>을 꾸려가는 빠띠의 활동가 우디(맨 왼쪽)가 ‘선을넘는몫소리’의 팀원 주연(가운데), 동찬(맨 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Parti
비슷한 듯 다른 세 팀의 교집합에서 탄생한 <선을넘는몫소리>
‘선을넘는몫소리’는 빠띠의 <그럼에도 우리는> 프로젝트를 계기로 구성한 프로젝트 팀으로, 지금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이곳 '이나영책방'(나영)과 책방을 함께 운영하는 출판사 '힐데와소피'(주연, 애란), 그리고 이들과 꾸준히 협업해온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동찬) 이렇게 3개 주체가 모여 만들어졌다. 힐데와소피와 이나영책방의 주요 관심 주제가 사회변혁, 평화, 북한이라면,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는 디아스포라, 이주민 문제에 주목해왔다. 세 팀은 수시로 연락하며 관심 주제에 관해 자유롭게 논의하며 활동의 교집합을 모색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고 있다. 올해는 '트랜스내셔널', '이주' 등을 주요 키워드로 삼아 선을넘는몫소리를 비롯한 프로젝트들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이나영책방의 이웃 동네이자 이주민 밀집 지역인 대림동을 참가자들과 함께 탐방하면서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대림동 탐방> 프로그램이다. 동찬이 주도적으로 진행해온 것인데, 이나영책방·힐데와소피가 '우리도 책방 손님들과 함께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협업을 제안해 함께하게 됐다. 사실 선을넘는몫소리도 이 프로그램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팀이라고 볼 수 있다. <대림동 탐방>에 참여하셨던 분들 대상으로 프로그램 후기 설문조사를 하면, '당사자와 만나 교류하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없어서 아쉽다'는 의견이 항상 나온다. 그래서 '사람책 도서관*' 형식으로 당사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자리의 필요성을 줄곧 인식하고 있었다.
*사람책 도서관이란 ‘사람’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독자/청자에게 전달하는 소통·교류 형식을 뜻한다.
"대구의 한 비영리단체에서 일했는데, 행사를 해도 매번 그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 참여하는 게 늘 아쉬웠어요. 인식개선 프로그램을 운영해도, 이미 인식이 개선된 사람들만 오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도대체 우리는 누구를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하지만 책방은 대중과의 접점이 넓기 때문에 저희가 만날 일 없는 사람들, 지나가다가 책방에 들어와서 "어? 북한?"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들에게도 저희 활동을 알릴 수 있죠."(주연)
대한민국 성평등 담론 경계 밖에 있는 '이주여성'의 '몫소리'를 전한다
세 팀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던 참에 동찬이 빠띠의 <그럼에도우리는> 사업을 알게 됐다. <그럼에도 우리는>의 주제는 '성평등'인데, 한국사회에서 이 주제를 다룰 때 일반적으로 그 대상을 '한국여성'으로 상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영역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전달해보자는 취지에서 <그럼에도 우리는>에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여성의 성평등권을 중심으로 이야가 오가는 자리에서 이질적인 목소리를 내는 게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주여성은 젠더폭력을 넘어 인종차별 등 복합적인 차별 층위에 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이란 존재가 비가시화되고 은닉되는 측면이 있다면, 이주여성은 여기서 한번 더 비가시화되고 은닉되고 있다. 이들 존재를 지속적으로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성평등 운동을 하는 여성인권단체이나 페미니즘 단체에선 이주여성 문제를 아우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의식이었어요. 이주여성은 이주인권 운동 측면에서만 다뤄지고 있죠. 저희가 성평등을 주제로 한 <그럼에도 우리는>에서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한다면, 여성인권과 이주인권이 만나 교차하는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동찬)
이때 이주여성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는 게 중요했다. 이주인권 관련 학회에 가보면 이주민 당사자는 한 명도 없다는 게 늘 불편했다. 왜 우리는 뭔가를 매개하지 않고서는 이주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까?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이주민, 탈북민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할 때 사실은 내가 이미 갖고 있는 어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주연이 대구에서 활동할 때 탈북민 사람책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끝나고 소감을 나눌 때 한 참가자가 "탈북 경험이나 북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하더라. 당시 사람책을 진행한 탈북민은 현재 남한 사회에서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지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대중은 '탈북민이니 탈북 이야기를 할 것'이라 기대했던 것 같다. 이렇게 누군가가 이주민, 탈북민이라는 '집단'으로 타자화, 대상화되는 걸 피하고 싶었다.
선을넘는몫소리가 <그럼에도 우리는>에 참여해 진행한 이주여성 사람책 도서관 <당신의 세계로 데려다주세요> ⓒ선을넘는몫소리
그래서 이주여성 사람책 도서관 <당신의 세계로 데려다주세요>를 기획할 때도 연사들이 한국사회가 이주민에게 기대하는 전형적인 서사를 구현하지 않길 바랐다. 한국 사회가 이주여성에게 기대하는 서사, 얼마나 어렵게 한국사회에 정착했고 마침내 어떻게 성공했는지, 그리하여 한국에 얼마나 감사하는지로 끝맺는 서사를 탈피하길 바랐다. 연사들과 행사 전 온라인 미팅을 할 때 이런 전형적인 서사를 피하기 위해 ‘진짜’ 사적인 이야기, 사소해보이지만 사실은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려고 노력했다. 결국 그렇게 연애사, 한국어 정복기처럼 저희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준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었다. 연애 이야기를 하신 최설(북한) 선생님은 “참가자 연령 제한이 있느냐, 야한 이야기 해도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웃음). 그리고 부티탄화(베트남) 선생님은 행사를 녹화한다거나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지 재차 확인하셨는데, 사전 미팅에서 공유하지 않았던 내용을 사람책 도서관에서 이야기하셨다.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사전 미팅에서 저희에게 하지 않은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들려주신 거라 들으면서 더 신이 났다. 저희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스스로 ‘이주여성’이라는 프레임을 깨는 쉽지 않은 일을 해내고서 매우 사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 같다.
“결혼이주여성이 ‘결혼’이란 행위를 계기로 한국에 온다는 건 곧 한국 특유의 가부장적 환경으로 진입하는 것이라서, 처음부터 성차별을 경험하기 마련이에요. 결혼이주여성은 한국사회에서 ‘나’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며느리’ 혹은 ‘부인’으로, 한국 남성과 결합했을 때 비로소 그 존재를 인정 받는 종속적 위치에 놓이는 거죠. 이분들에게 ‘온전한 나’로써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서사를 가치 있는 역사로 풀어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드리고 싶었어요.” (동찬)
"<당신의 세계로 데려다주세요>에서 가능하면 다양한 배경의 이주여성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북한, 베트남, 콩고민주공화국, 마다가스카르에서 이주한 연사들을 어렵게 모셨는데, 행사 끝나고 북한에서 오신 최설 선생님께서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여성을 만난 건 처음”이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아요. ‘내 이야기 실컷해서 좋았다’를 넘어 ‘다른 이주여성의 삶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라는 소감 듣고 나니까, 다음 기회가 있다면 다양한 배경의 이주여성들이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연)
선을넘는몫소리가 꿈꾸는 변화
그야말로 ‘꿈꾸는’ 변화라면- 일단 법을 싹 고치고 싶다(웃음).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들의 존재가 제도적으로 안정되지 않으면 위치성 문제는 있을 수밖에 없다. 국내 이주민 인구 중 중국 동포가 많은 것도 이들이 상대적으로 대한민국 비자를 받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제도가 사는 변함없이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틀거리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계속 똑같이 돌아갈 거다. 기존의 무언가를 지키려고 하다 보면 차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기존의 무엇을 지켜야 한다는 관념을 깨뜨리고 큰 틀을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것 중 하나가 정체성인 것 같다. 하지만 타자와 구분되는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이 있다는 건 착각이라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또한 사후적으로 구성된 허구라고 생각한다. 동찬은 중국 선양(瀋陽) 태생으로 국경 넘어 한국으로 이주한 지 8년 됐는데, 오랫동안 “중국이 한국과 축구 시합을 하면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 같은 질문에 시달리며 정체성과 한국에 대한 충정 여부를 검증당해왔다. 국적을 비롯한 여러 정체성은 인위적으로 구성된 산물이지 고유한 무엇이 아니다. 국적, 인종, 민족처럼 인위적인 정체성에 의해 구분되고 대상화되지 않고, 각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존중 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여기 살아있음이 곧 정체성이 되는 ‘존재의 정체성’을 토대로 만남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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