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청년층이 덜렁덜렁 계약을 해서 발생했다?
- 작성자: 바다Bada
- 작성일: 2024.06.03. 12:00
- 조회수: 98
5월 13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사기 관련 출입기자단 차담회’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견을 표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박 장관이 한 “전세를 얻는 젊은 분들이 경험이 없다보니 덜렁덜렁 계약을 했던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발언이 화제가 됐습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5월 14일 의원총회 모두 발언에서 박 장관의 발언에 대해 “8번째 전세사기피해자의 죽음이 2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과연 입에 올릴 수 있는 말인지 시민의 주거안정을 책임질 국토부 장관의 자격은 물론 그 기본적인 인격마저 의심스럽습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시민팩트체커 그룹 K.F.C.는 논란의 대상인 박 장관 발언이 사실인지 확인해 봤습니다.
전세사기 청년이 주로 당했다?
박상우 장관의 발언은 전세사기 피해자 중에서도 청년층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피해자등 1,432건 결정' 보도자료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통계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4년 4월 17일 누계 기준, 국토부로 이관된 20,773건 중 15,433건이 전세사기로 가결되었고, 이 중에서 73%에 달하는 피해자들이 40세 미만의 청년층이었습니다.
20세 미만 | 20세 이상 30세 미만 | 30세 이상 40세 미만 | 40세 이상 50세 미만 | 50세 이상 60세 미만 | 60세 이상 70세 미만 | 70세 이상 |
1건 | 3,949건 | 7,425건 | 2,325건 | 1,073건 | 484건 | 176건 |
출처: 국토교통부 보도자료
피해 규모에선 보증금 3억 원 미만 사례가 다수였는데요. 1억 원 이하가 전체의 43% 이상이었습니다. 보증금 3억 원 이하로 범위를 넓히면 전체의 97%가 해당하게 됩니다. 즉, 국토교통부가 인정한 전세사기 피해자의 대부분은 보증금 3억 원 이하의 사례였습니다.
1억원 이하 | 1억원 초과 2억원 이하 | 2억원 초과 3억원 이하 | 3억원 초과 4억원 이하 | 4억원 초과 5억원 이하 | 5억원 초과 |
6,732건 | 5,868건 | 2,380건 | 390건 | 61건 | 2건 |
출처: 국토교통부 보도자료
정리해 보면 국토교통부가 인정한 전세사기 피해자는 대부분 40세 미만의 청년층이었으며, 피해 규모는 3억 원 이하였습니다.
사전 인지가 불가능한 전세사기 피해는 없다?
가장 중요한 건 박상우 장관의 발언처럼 ‘전세사기 피해가 모두 피해자의 부주의로 인해 발생했는지’겠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전세사기 피해 사례를 분석한 자료를 국토교통부 등에서 확인했으나 세부 사례를 책임 단위까지 분석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피해자 인터뷰 및 분석 자료,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공개된 사례들은 확인힐 수 있었는데요. 한국도시연구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 가구 실태조사 및 피해 회복과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조사에 응한 피해자들 중 92.5%가 “임대인 등의 전세사기 의도를 의심할만한 이유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보증금 반환능력없이 다수 주택을 취득하여 임대”, “근저당권이 과다하게 설정된 깡통주택” 등이 꼽혔는데요. 이 중엔 “보증금 반환능력이 없는 바지임대인으로 변경” 등도 존재했습니다.
전세사기 사건을 다룬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피해자들이 언급한 사례를 찾을 수 있었는데요. 지난해 4월 경향신문에 보도된 서울시 관악구의 피해자는 “‘혹시나’하는 마음에 등기부등본을 새로 떼어봤다가 자신도 모르게 반년 전에 집주인이 바뀐 사실”을 알았습니다. 새 집주인은 피해자가 ‘계약 만료 시기에 맞춰 나가겠다’라고 이야기 하자 “돌려 줄 돈이 없으니 계속 살던지 법대로 하라”라고 답변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던 건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대인의 행동이 합법이었기 때문인데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4항은 “임차주택의 양수인(그 밖에 임대할 권리를 승계한 자를 포함한다)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으로 본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집을 팔면 임대계약도 함께 양도되는 셈이죠.
하지만 법 어디에도 ‘임차인에게 매매 사실을 공유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임대차 계약을 맺은 후 임대인이 어떠한 통지도 없이 주택을 매매 하고, 임차인은 뒤늦게 전세금 반환 능력이 없는 인물로 임대인이 바뀌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상황이 발행한 겁니다. 피해자 입장에선 임대인이 변경되어 전세금을 받지 못하는 사기를 당했지만 사전에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임차인 입장에서 사기 우려가 있는 집을 사전에 인지할 수 없는 사례는 더 있었는데요. 근린생활시설을 주택인 것처럼 위조해 대출을 받게 하고 전세 계약을 맺은 사례, 공인중개사가 월셋집을 전셋집으로 둔갑시킨 사례 등 집을 구하는 입장에선 전세사기 위험을 미리 알아차리기 힘든 사례가 반복해서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습니다.
전세사기 부추긴 실효성 없는 한국 등기부등본
앞서 살펴본 사례들은 모두 전세사기를 사전에 확인할 수 없었던 사례인데요. 대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한 후 원인 중 하나로 임차인이 첫 번째로 확인하는 서류인 등기부등본이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2022년 12월 중앙일보에 보도된 서울시 강서구의 피해자 사례가 한국 등기부등본의 문제점을 잘 보여주는데요. 이 사건의 임대인은 은행의 근저당권이 없는 것처럼 속이기 위해 “근저당권 말소에 필요한 서류와 은행의 법인인감을 위조해 등기소에 제출했고, 등기부등본상에서 근저당권이 말소됐”습니다. 이후 임대인이 은행 대출을 갚지 않아 피해자가 살고 있는 집은 경매에 넘겨졌습니다.
앞선 사례처럼 등기부등본 자체에 오류가 있거나 임대인이 등기부등본을 위조하는 경우 임차인이 피해를 예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로인해 한국의 등기 제도를 비판하는 보도들에선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등기부등본의 공신력을 확보한 해외 사례를 비교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2020년 KBS는 이른바 ‘니코틴 살인사건’의 사례를 통해 한국 등기부등본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요. 등기부등본에 명시된 내용과 다른 사실이 존재하더라도 구제받을 수 없는 한국과 달리 해외엔 “등기부의 공신력을 인정하는 나라들이 꽤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KBS가 내세운 근거는 독일 민법 제892조와 893조입니다. 해당 조문은 동아대 장병일 교수의 ’독일 민법상 부동산의 선의취득’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요. 독일 민법에선 등기부등본의 내용을 기본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당함에 대한 이의가 등기되어 있거나 또는 취득자가 그 정당하지 아니함을 알았을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단서 조항을 두었는데요.
쉽게 말하면 임차인이 계약을 맺을 당시 등기부등본 상의 내용을 믿고 계약을 한 경우 추후 등기부등본과 반하는 내용이 확인되더라도 계약을 인정하고 보호해 준다는 뜻입니다. KBS는 한국과 달리 영국, 미국 등에선 등기담당 기관의 실수로 피해를 본 경우 이를 국가가 손해 배상한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청년이 덜렁덜렁 계약해서?...'대체로 사실이 아님'
정리해 보자면 박상우 장관의 발언처럼 전세사기 피해자의 대부분은 청년이었지만 전세사기 피해 사례에는 사전에 인지가 불가능한 경우가 반복해서 등장했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인정한 전체 사례를 모두 살필 수 없어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민간 연구소의 피해자 조사 결과 보고서, 복수의 언론 보도를 통해 전세 계약 전에 확인이 불가능한 사기 사례가 있음이 확인됩니다. 이에 박 장관의 ‘전세사기, 청년층이 덜렁덜렁 계약을 해서 발생했다?’ 발언은 ‘대체로 사실이 아님’으로 판정합니다.
박 장관의 발언 후 대전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원회는 성명을 발표해 “전세사기 피해 중 단일 피해자 기준 최대 피해를 입은 경우는 LH”라고 비판하며 “국토부가 관사 목적으로 계약했던 대구 다가구주택은 소송까지 진행했지만, 보증금 6000만 원 중 4000만 원을 받지 못했다”라며 국토부의 사례로 발언을 반박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국토부는 “개인이 충분한 정보 없이 계약을 맺는 과정과 구조여서 허술했다는 의미”였다며 “피해자 개인에 책임을 돌리는 취지는 아니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이철빈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은 K.F.C.와의 인터뷰에서 “전세사기 문제 주무 부처 장관이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건 전세사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것”이라며 박 장관 발언을 비판했습니다. 이어 “임대인-임차인 간 정보, 권한 비대칭은 여전히 매우 심각하다”라며 해결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이 공동위원장은 “지난 1년간 국토부, 여당, 대통령실 그 어디서도 만나주지 않았는데 이것 자체가 큰 문제”라며 “(해결책 마련을 위해) 전면적인 피해 실태조사를 하고, 피해자 공식 면담을 통해 피해자와 소통하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공공기관이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을 우선 구제하고 임대인에게 추후 구상권을 청구하는 ‘선구제 후구상’ 방안이 담긴 전세사기 특별법은 5월 2일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 장관의 특별법 반대 입장 표명 후 5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21대 국회에서 최종 폐기되었습니다.
*이 결과물은 시민 협업 팩트체크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K.F.C.(Korean Factcheckers’ Community)의 바다, 정기훈, whitedesert 시민팩트체커의 협업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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