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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국내언론이 연이어 보도한 ‘푸틴 심정지설’, BBC는 보도 안 했다?

  • 작성자: 수호
  • 작성일: 2023.10.25. 20:14
  • 조회수: 305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10월 22일 심정지로 쓰러졌다’ 이 문장 혹시 어제 보셨나요? 보셨다면 사실인지 의심하셨나요? 이 문장은 10월 24일 오전 다수의 한국 언론들을 통해 보도된 정보입니다. 내용만으로도 충격적인데요. 소셜미디어 X(구 트위터)에선 ‘푸틴 심정지'가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X의 한 유저는 해당 정보를 BBC는 보도하지 않았다며 ‘K기레기의 호들갑’이라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시민팩트체커 그룹 K.F.C.가 게시글의 주장이 사실인지, ‘푸틴 심정지설'은 해외 언론에서 어떻게 다뤄졌는지 확인해봤습니다.

 

6시간 동안 78건의 ‘푸틴 심정지설’ 보도 쏟아낸 한국 언론

먼저 한국 언론의 보도 양상부터 살펴봤습니다. 네이버 검색을 활용해 10월 24일 작성된 기사 중 “푸틴”이 들어간 기사의 목록을 확인했는데요. 확인결과 뉴스1 ‘"푸틴, 심정지로 바닥에 쓰러진 채 발견"…또 불거진 위독설’이 오전 8시 45분 가장 먼저 보도했고, 이어 문화일보 ‘“침실에서 쓰러지는 소리”…푸틴 심정지설 퍼져’도 오전 9시 19분에 같은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두 보도의 출처는 “제너럴 SVR”이라는 이름의 텔레그램 채널이었습니다.

YTN ‘푸틴 위독설 루머 또 제기…“심정지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는 오전 9시 55분 뉴스1을 출처로 언급하며 같은 정보를 보도했습니다. 오후 12시 1분에 발행된 매일경제 ‘英 매체 “푸틴 침실서 심장마비 상태로 발견”…건강이상설 재점화’ 등 일부 보도는 영국의 타블로이드지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보도를 언급하며 ‘푸틴 심정지설’을 전달했습니다.

‘푸틴 심정지설'은 24일 오후 러시아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의 활동과 사진을 공개하며 일단락 됐는데요. 네이버 검색을 통해 확인한 결과 크렘린궁의 사진 공개 전까지 ‘푸틴 심정지설’을 전달한 보도는 약 6시간 동안 78건이었습니다. 78건의 보도 중에는 연합뉴스와 같은 통신사, SBS와 같은 방송사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터넷 언론 등에서도 같은 내용을 다뤘습니다. 보도 양상을 보면 매체의 유형, 성향, 규모 등과 상관없이 다양한 언론이 보도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BBC, CNN, 르몽드, 요미우리 모두 무보도

그렇다면 X에서 등장한 주장처럼 BBC는 푸틴 심정지설을 보도하지 않았을까요? 24일 오후 9시 기준으로 BBC 홈페이지의 검색기능을 활용해 확인한 결과 관련 보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BBC 유럽 페이지에도 관련 보도는 없었습니다.

보다 정확한 검증을 위해 BBC 외에 다른 해외 언론도 확인해봤는데요. 먼저 CNN입니다. CNN 홈페이지에서 ‘putin’ 등의 검색어로 확인한 결과 24일 오후 9시까지 관련 보도가 없었습니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어떨까요? 르몽드의 러시아 관련 뉴스 페이지 등을 확인한 결과 ‘푸틴 심정지설’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도 홈페이지 검색 등을 통해 확인했을 때 관련 보도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영국의 통신사 로이터에서 관련 보도를 찾을 수 있었는데요. 이마저도 한국 언론 보도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내용을 확인해보니 크렘린궁의 입장을 전달한 기사였기 때문입니다. 정리해보면 ‘국내언론이 연이어 보도한 ‘푸틴 심정지설’, BBC는 보도 안 했다’라는 주장은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BBC뿐만 아니라 복수의 해외 언론도 ‘푸틴 심정지설’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음모론 생산하는 텔레그램 채널 그대로 받아쓴 한국 언론사들

이번 팩트체크에선 결과보다 사족이 조금 더 중요합니다. 한국 언론과 달리 해외 언론은 왜 이 소식을 다루지 않았는지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푸틴 심정지설’의 출처는 러시아의 텔레그램 채널 ‘제너럴 SVR’이었습니다. 한국 언론 보도만 보면 대단한 곳처럼 보이는데요.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K.F.C. 시민팩트체커들이 직접 들어가봤습니다.

출처: 텔레그램 ‘제너럴 SVR’ 채널

직접 확인해보니 ‘제너럴 SVR’은 대단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일방적인 메시지가 전달되는 여타 ‘텔레그램 채널’과 같았는데요. 한국 언론이 열심히 쓴 기사의 출처는 이 채널에 올라온 메시지 하나였습니다. 내용을 해석해보면 ‘푸틴 대통령이 22일 밤 심정지로 쓰러졌다가 발견됐다’, ‘의사들의 조치로 회복했으나 가을을 넘기기 힘들다는 의견에 주변이 동요하고 있다'라는 일방적 주장뿐이었습니다. 별다른 근거는 없었습니다. 확인된 사실이라 보기 어려운 정보인 셈이죠.

이뿐만 아니라 ‘제너럴 SVR’은 해외 언론의 팩트체크 보도에도 등장한 이력이 있습니다. 2022년 9월 뉴스위크는 ‘제너럴 SVR’에서 확산된 ‘푸틴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한 차량 공격이 있었다’라는 루머를 검증했는데요. 당시에도 영국의 데일리 익스프레스 등 타블로이드지의 보도와 함께 ‘제너럴 SVR’ 채널에서 나온 루머가 확산됐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도 사실 확인은 불가능했습니다. 유럽 정책 분석 센터(CEPA)의 올가 로트만 선임 연구원은 X를 통해 해당 루머를 언급하며 “공황상태를 조성하려는 출처가 없는 정보 확산에 주의하기 바란다”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제너럴 SVR’ 채널에서 확산된 확인되지 않은 정보는 ‘푸틴 암살설’ 하나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해당 채널에선 ‘푸틴 대통령 대역설’도 주장했고, 암 수술을 위해 권력을 이양할 것이라는 주장도 펼쳤습니다. 물론 사실로 드러난 것은 없습니다.

인사이더는 ‘제너럴 SVR’에 대해 취재하며 영국 킹스칼리지에서 러시아의 선전 및 미디어를 연구하고 있는 제이드 맥글린 박사의 의견을 전달했는데요. 맥글린 박사는 텔레그램 내의 여러 채널이 오염되고 있다는 걸 지적하며 ‘제너럴 SVR’이 황당한 정보를 주장해 “멍청하다”는 이유로 서방 언론에서 잘 통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푸틴이 곧 사라질 테니 우리는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와 같은 생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정보를 받아들이기 전에 확인하는 습관 길러야

앞의 내용을 확인하고, 한국 언론의 보도를 다시 보니 어떠신가요?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건 한국 언론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그대로 기사화 한다는 것입니다. ‘제너럴 SVR’은 확인할 수 없는 정보를 반복해서 확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했고, 많은 매체가 서로를 인용하며 기사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BBC와 같은 해외 언론은 달랐습니다. 적어도 저널리즘의 기본인 사실관계 확인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반면 연합뉴스 ‘"푸틴, 심정지로 심폐소생술" 소문 확산…러 '멀쩡한 모습' 공개(종합)’, 서울신문 ‘툭하면 “푸틴 위독” 이번엔 심정지설…크렘린 “웃음만 나올 뿐” 공식 부인’ 등은 오전에 루머를 보도하고, 오후에 루머를 부정하는 크렘린궁의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보도 과정에서 저널리즘의 기초인 팩트체크를 수행하지 않는 언론이 한국에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수많은 정보가 확산되고 있지만 보신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었다고 하더라도 모든 정보가 사실인 것은 아닙니다. 특수한 언론환경에 놓인 한국 사회에서 팩트체크 활동을 비롯해 ‘확신하기 전에 확인하는 습관’이 더욱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 결과물은 시민 협업 팩트체크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K.F.C.(Korean Factcheckers’ Community)의  바다정기훈수호 시민팩트체커의 협업으로 작성됐습니다.

**이 결과물을 비롯해 더 많은 검증 결과물은 K.F.C.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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