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환경에 대해 말한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를 덜 버리며 에코소비를 하자고 주장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문제라는 목소리도 높다. ‘이제는 친환경을 넘어 필(必)환경 시대’라는 얘기도 들린다.
머리로는 다들 안다. 생각은 많이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말로 환경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귀찮은 게 싫어서, 마음은 있는데 이게 편해서,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왠지 피부로 안 와닿아서 그냥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사는 사람도 많을 터다.
환경이 먼 나라 바깥세상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나와 내 가족의 이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내가 먼저 변해야 세상이 바뀐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환경은 ‘어쩌다 한번 떠올리고 가끔 생각날 때만 실천하는 선행’이 아니다. 생존의 문제고 오늘의 숙제다. 밥벌이의 고단함에 뼈가 저려도, 지금 당장 지구를 살리는 게 우선이라는 ‘환경人’들을 만나본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들을 직접 실천한 환경 선구자들과의 대화록이다. [편집자주]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청년기후긴급행동’이라는 청년 기후단체가 있다. 이름만 들어도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감이 온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김공룡과 친구들’이다. 왜 공룡일까? 오래전에 멸종한 공룡들이 (멸종 위기에 놓인) 2021년의 인간들에게 기후위기에 당장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는 취지다.
정말로, 인류가 공룡처럼 지구에서 사라질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대로 계속 뜨거워지면 미래의 지구에는 큰 위기가 닥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게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내일, 또는 지금 당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신들을 ‘김공룡과 친구들’이라고 부르는 청년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들은 사람들에게 무슨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할까.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긴급한’ 행동은 뭘까? 청년기후긴급행동 오지혁 대표와 이은호, 강은빈, 조은별 활동가에게 던진 질문과 그들의 답을 아래 옮긴다. 지구의 환경을 보는 청년들의 목소리다. 참고로, 오지혁 대표는 2000년생으로 ‘찐’ Z세대다.
“답답함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청년 기후단체”
청년기후긴급행동은 2020년 1월 첫발을 내딛었다. 기후 관련 단체나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모여 청년 기후단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기후단체들이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했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사람들이 많이 얘기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했다. 그 답답함을 깨고,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보고 싶어서 모였다. 그게 벌써 14개월 전 얘기다. 아래는 이들과 나눈 문답. 오지혁 대표가 주로 답했고, 다른 활동가들의 답변에는 따로 이름을 적어두었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은 어떤 분들이 모여서 만들었나요
저희가 처음 모인 건 2020년 1월이었어요. 이때 누군가는 이미 에너지·환경 분야에서 몇 년 동안 일을 한 경험이 있었고, 누군가는 이제 막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었죠. 사실 요즘 들어오는 사람들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지만, 당시에 함께 했던 사람들은 전부 기후 관련 단체나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공동행동’이란 이름으로 느슨한 청년 연대체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다른 환경단체나 청년단체 등과는 어떤 점에서 다름을 추구하려고 했습니까
조금 더 직관적으로 답하자면, 긴급행동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예요. 한국에도 크고 작은 청년 기후단체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이 한 데 모여서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적은 없거든요. 또 지금의 위기가 너무나 심각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거리에서 '행동'하며 목소리 낼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답답해하던 우리는 직접행동을 통해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고, 한국 사회에 변화의 흐름을 만들기로 다짐했어요. 거대한 사회적 변화는 다수의 행동을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어느 정도 인원이 참여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그 분들이 큰 틀에서 어떻게 일을 나눠 하고 계시는지도 궁금하고요
긴급행동에 참여하는 인원은 60-70명 사이예요. 보통은 이 분들이 특정 역할을 염두에 두고 들어오기보다, 안에서 이런 저런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역할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지금 저희는 한국 기업들이 투자하고 있는 베트남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를 막는 팀, 가덕도 신공항 사업을 백지화시키기 위한 팀, 그리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응하는 팀을 각각 운영하고 있어요. 또 누군가는 SNS와 유튜브 채널을 관리하고, 누군가는 조직구성을 따로 고민하죠.
청년기후 긴급행동을 결성하고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사실 청년단체나 기후위기 관련 동아리가 많지만 환경을 얘기하거나 정치적인 요구를 구체적으로 내세우는 곳이 적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은호) 인천 송도에서 발표된 2018년도 유엔 IPCC 1.5도씨 특별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가 탄소배출을 지금처럼 하면 지구 온도가 1.5도 넘게 올라가 돌이킬 수 없게 되기까지 10년도 채 안 남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지구온난화, 기후변화가 먼 미래의 남 일처럼 여겨졌는데 발등에 불 떨어지게 된 거죠. 말 그대로 기후위기인데요. 이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뭔가 행동이 필요하다고 마음을 모은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김공룡과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SNS에서 화제입니다. 멸종을 경험해 본 공룡들이 (멸종위기에 놓인) 인간들을 구하러 왔다는 느낌도 드는데요. 이 네이밍은 어디에 출발해 어떻게 구체화됐나요
(이은호) 작년 1월 31일, 당시 조명래 전 환경부장관이 청년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어요. 거기서 대한민국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에 미온적이라고 문제제기하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피켓만 들고 서 있는 기존 방식이 아쉬운 거예요. 그래서 좀 재밌고 발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갑자기 180cm가 넘는 빨강 파랑 초록 공룡들이 행사장에 들어가서 드러눕는(다이-인) 퍼포먼스를 생각했어요. '우리처럼 멸종할래?' 피켓을 들고요.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인간도 멸종할지 모른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그 이후 청년기후긴급행동을 정식으로 시작하면서, 재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별명 같은 걸로 '김공룡과 친구들'을 채택했어요.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참여하면 되나요. 혹시 자격이 따로 있나요
(이은호)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느끼며 ‘직접행동’을 고민하는 청년이라면 누구든 환영합니다!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거나, 외부 활동 경험이 적다고 느끼더라도 전혀 문제 없으니 자신 있게 문을 두드려주세요. 저희의 핵심 가치에만 동의하신다면 어떠한 의견도 쉽게 지나치지 않고 있거든요. 참고로 회비는 별도로 걷지 않고 멤버들에게 자발적으로 ‘활동 밑천’을 받고 있습니다.
“말로만 위기 외치며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안 믿는다”
이들은 지난해 환경부 장관과 직접 만났고, 한국전력 이사들과 만나 석탄 투자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국회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켰을때는 가장 먼저 현장에 달려가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기존의 산업과 문화, 정치제도의 거대한 전환만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말로만 위기를 외치며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안 믿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기후위기를 막아야 한다고 이토록 절실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그게 청년 세대에게는 미래의 일이 아니어서다.
환경부장관과의 타운홀 미팅으로 화제가 됐고, 그 후 1년여가 지났습니다. 석탄 투자를 막겠다며 한전 이사들을 접촉하거나 산업통상자원부를 방문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해오셨죠. '김공룡과 친구들은' 어떤 활동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무슨 원칙으로 움직이나요
작년 중순 작성한 단체 소개문구로 답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비폭력 직접행동에 나서는 청년 단체입니다. 우리는 세대, 계층, 국가, 생물종 간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에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위기인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것을 시대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이를 위해 다양한 주체와 연대하며 사회적 움직임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기존의 산업과 문화, 정치제도의 거대한 전환만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위기를 초래한 화석연료 산업에 얽힌 욕망의 고리를 과감히 끊어냅시다. 이제는 젊은 세대가 기득권에게 변화를 촉구할 뿐 아니라, 전환의 핵심 주체로 활약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는 무게가 사람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누구는 먼 미래로 여기고, 또 누구는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고 느끼겠죠. '긴급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단체의 성격은 이름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죠. 청년기후긴급행동은 지금까지 "긴급한 대응이 필요한 사안"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왔습니다. 예컨대 한국 정부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석탄발전소를 짓겠다고 말했을 때, 대통령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제로를 달성하겠다는 약속 앞에서 머뭇거렸을 때, 그리고 국회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켰을 때, 우리는 급한 마음으로 가장 먼저 현장에서 행동했거든요. ‘누군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야 하는데 모두가 가만히 앉아있다’는 절박함이 매번 동력을 제공한 것 같아요.
'지금이 정말 긴급한 상황이니 위기 의식을 갖자'는 의미로도 들립니다
글을 써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겁니다. 마감 시간이 조여올 때, 평소에 머뭇거리던 사람도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30분만에 A4용지 한 바닥을 채운다는 사실을 말이죠. 사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마감을 앞둔 우리에게 적당한 '위기의식'이 있다면,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정치적 변화와 사회적 연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기도 하거든요. 말로만 위기를 외치면서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는 더 이상 믿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매 순간이 급하게 느껴집니다.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은 위기의식이 몸과 언어로 동시에 표현되는 순간이죠. 우리의 '긴급행동'은 이 사회의 거짓된 평온함을 깨는 파열음이자, 고요하고 어두웠던 밤의 끝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입니다.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기후위기를 논하면서 늘 등장하는 2050년이 어떤 이들에게는 먼 미래지만, 청년들은 2050년에도 여전히 젊잖아요. '우리 세대의 일'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는데요, 2050년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다가오나요
2000년생인 저는 2050년에 만 50세가 됩니다. 공자는 이 때가 ‘하늘의 뜻을 알게 된 시점’었다고 했는데, 저에게는 ‘기후운동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것 같아요. 기후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현 시점에서 21세기 중반에 도달했을 때,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지 매 순간 상상하면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겐 고작 한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인 '30년'이 남았거든요.
그러면 청년으로서, 어떤 노력이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어쩌면 개인의 삶과 공적인 영역이 구분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1.5도씨 온실가스 감축 경로' 위에 제 삶을 올려놓기 위해 노력해나갈 생각이에요. 말하자면 2030년, 2040년, 그리고 2050년의 목표를 매년 점검하며 '인류가 어떤 길을 걷는지' 성찰하는 셈이죠. 필요한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요. 물론 이때 온실가스 지표로 드러나지 않는 사회적 변화들을 함께 되돌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도로에 내연기관차가 얼마나 많이 굴러다니는지, 우리집 식탁에 아직도 비윤리적인 과정을 거친 고기가 올라오는지, 또 석탄발전소가 폐쇄된 뒤로 지역사회와 노동자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지 한 번씩 점검하는 것이죠. 우리는 2050년이 절대적인 기준점이 아니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하지만, 마감 시점을 정해두는 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의 활동이 세상을 구체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보시나요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우리 행동 이후 관련 사업이 정말 중단되거나 눈에 확 띄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의미한 건 아니겠지요. 이런 활동이 전혀 없었다면 세상이 어땠을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만드는 것이 쌓이고 쌓여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조금씩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작년에 탄소중립을 선언했는데, 우리를 비롯한 여러 기후단체가 만일 하나도 없고 그와 관련한 사회적 동력이 없었다면 과연 국제적인 흐름만으로 그런 변화가 생겼을까요? 작더라도 계속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의 목소리와 실천이 변화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업과 사회를 움직이는 더 큰 힘은 제도와 정책, 법률 같은 것들이죠. 이런 부분에서의 변화를 기대만큼 이끌어내고 있다고 보나요
(이은호) 말씀대로 아직 변화의 동력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이번 보궐선거 대응을 위한 '멸종 막는 기후 0번 김공룡 캠프' 기획처럼, 기후위기 대응 목소리를 실질적인 정책에 반영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계속 해나갈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탈석탄, 기업 이미지 쇄신용 구호에 그치면 안 돼”
그린뉴딜과 탄소중립의 시대다. 정부 각 부처가 앞다퉈 저 키워드를 언급하고 수많은 기업들이 그에 대한 계획을 밝힌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와 기업의 실제 행보가 키워드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린뉴딜이 아니라 녹색으로 덧칠한 회색뉴딜’이라며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들이 기자에게 보내온 기자회견 자료사진 파일명은 (그린뉴딜이 아닌) ‘구린뉴딜’이었다. 두산중공업과 삼성물산, 하나은행, 수출입은행, 그리고 한국전력에 대해서는 ‘탄소오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탈석탄’ 행보를 보이라는 주장이다.
정부가 '그린뉴딜'을 말하고 '탄소중립'을 얘기합니다. 워낙 자주 들어서 귀에 익은 단어고 또 좋은 취지인데 한편으로는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저런 키워드를 어떻게 느끼나요
(이은호) 하나같이 절박하고 중요한 용어들인데, 정부가 실제 보여주는 것은 대기업, 기술 중심 정책에 뒤로는 베트남 붕앙2, 인도네시아 자와 9, 10 같이 해외석탄투자, 가덕도 신공항처럼 모순되는 결정을 계속 내리니까 그냥 있어 보이는 포장지 같아요. 말만 멋있게 하고 실천은 반대로 가는 느낌이랄까요.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생각하기는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이번 보궐선거 유력 후보들도 마찬가지지만요.
‘그린뉴딜이 아니라 녹색으로 덧칠한 회색뉴딜’이라고 주장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환경 매체에서는 '그을린 뉴딜 말고 그린뉴딜'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의 활동을 소개했더군요. 청년들의 미래가 정말로 녹색이려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들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이은호) 일단, 지금 권위를 가지고 정부의 2050 탄소중립 비전을 실현할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청년 위원들이 손에 꼽을 정도(극소수)라고 해요. 청년들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하여 생색만 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탄소배출을 가속화하는 토건정책을 하는 모습들을 버리고,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화석연료 퇴출', '재생에너지 100%', '공장식 축산 폐지', '공공교통 확충'과 같은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죠.
두산중공업과 삼성물산, 하나은행, 수출입은행, 그리고 한국전력을 '탄소오적'이라고 표현하신 적 있습니다. '을사오적'에 빗댄 표현이니 수위가 꽤 센대요.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러셨겠지요. 저기 언급된 기업들은 여러분들에게 지금까지 어떤 반응들을 보여왔나요
(강은빈) 지난 2월, 저희는 탄소오적 측에 녹색분칠 의혹을 제기하고 석탄발전수출사업 철회를 촉구하는 공개질의서를 발송했습니다. 발송 이후 담당자 측에 연락을 취한 결과, 수출입은행과 두산중공업은 검토 후 회신하겠다 했으나 답변하지 않았고, 삼성물산은 시공사 입장에서 답변을 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답했으며, 한국전력은 회신을 미루다가 결국 '공식 답변을 주지 않겠다'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하나은행은 탈석탄 선언과 함께, 붕앙-2 사업 참여를 철회하였습니다. 이제 탄소사적이 된 셈이지요.
지난 연말 발표한 '탄소오적 저지 선언문'을 저도 읽어봤습니다. 탄소중립이 구호로만 그치고 실제 현실은 그와 다르다는 주장으로 읽혔습니다. '기존 사업까지만 그대로 하고, 앞으로는 안 하겠다'는 반론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이신가요
(강은빈) 탈석탄이란 기업 이미지 쇄신용으로 내거는 구호가 아닙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전환은 기업의 변화 없이는 결코 불가능한데요,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기업이 응답하면서 탈석탄 선언을 하는 것이죠. 진행 중이던 사업 재검토·철회 없이 탈석탄을 하겠다는 건 기후위기 해결에 무임승차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면 해당 기업들에게는 어떤 얘기를 들려주고 싶나요
2020년 한국전력공사가 붕앙-2 사업을 인수하게 된 배경에는, 탈탄소 선언을 하면서 해외 석탄화력발전사업에서 철수한 중국(중화전력공사)이 있습니다. 두산중공업과 삼성물산이 참여하기 전 붕앙-2 건설시공사였던 제너럴일렉트릭 또한 동일한 이유로 사업을 철회했습니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사업에 참여하면서 탈석탄 선언하는 건 '우리 기업은 기후위기 대응엔 관심 없고 친환경 기업으로 주가 상승, 이미지 쇄신만 꾀하겠다'는 걸로밖에 안 보인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기업과 정치인, 긴장하고 정신 차려야”
인류는 전기를 써야 한다. 인구가 늘어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기 사용량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편에서는 ‘석탄 발전을 줄이라는 주장만으로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이 청년들은 ‘모든 분야가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면서 기업과 정부를 향해 ‘정신을 차리라’고 따끔하게 조언했다. ‘정부가 나서 선제적으로 시선을 바꾸면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밝혔다.
석탄발전을 줄이고 멈추라는 주장에 심정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석탄발전 하지 말고 원자력은 위험하다고 하면 도대체 전기는 어디서 다 만드냐'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태양광 등 대안이 있지만 아직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인류가 어디서 전기를 얻어야 하느냐'라는 질문에는 어떤 답변을 주실지 궁금합니다
누구나 처음 보는 변화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죠. '재생에너지 발전 100%'가 맞는 길인지, 또는 애초에 가능한지 의문을 품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많은 경우에 석탄이라는 눈에 보이는 연료를 산더미만큼 쌓아올려서 태운다던가, 왠지 효율이 뛰어날 것 같은 대형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것은 손쉬운 해결책으로 오해되기 쉽거든요. 태양광 패널에 대한 잘못된 정보뿐만 아니라 풍력과 수력은 비효율적이라는 인식도 아직 흔하고요. 하지만 세계의 흐름은 한국사회의 통념과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어요.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의하면 지난 20년 동안 재생에너지 신규 용량은 급속도로 증가한 반면, 화석연료의 증가폭은 2015년부터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거든요. 특히 에너지 수요가 낮아진 코로나19 국면에서, 재생에너지는 낮은 가격에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담당했습니다.
해외 사례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의미하는건가요
이에 더해, 미국 민주당은 올해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했고,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작년 말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25%"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어요. 온실가스 배출 1, 2위 국가들이 앞다퉈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겠다고 공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각국 정부가 기후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해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석탄발전과 핵발전은 이제 단가도 비싸졌고 일자리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봐야 해요. 한마디로 "화석연료의 시대는 끝났다"고 여기는 게 맞죠. 21세기의 '에너지 전환'은 후퇴가 아닌 진보입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 100%를 달성하는 것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만들기 위한 전제 조건이고요.
우리나라는 저출산이 문제지만, 세계적으로는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언젠가는 100억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있더군요. 그러면 지금보다 더 많은 물과 식량이 필요하고, 에너지도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 저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이은호) 결국엔 탈성장 방향으로 가야겠지만, 일단은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죠. 그리고 우리가 어떤 미래를 향해 가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기후변화가 심각해지고 있음을 꾸준히 이야기해 왔지만, 최근 정부가 탄소중립을 선언하기 전까지는 대부분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가 된 현실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먼저 나서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니, 움직이지 않던 산업계부터 일반 시민들까지 모두 기후위기를 인정하게 되었죠. 이렇게 국가의 중심인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 관점을 바꾸는 것은 분명 큰 효과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이 무엇인지 먼저 인식하고 공표하여 정부기관, 산업계, 학계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앞으로 올 기후위기의 피해에 대비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질문주신 식량부족 문제, 에너지 공급의 문제에 대한 안전망을 조금이나마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1차 인터뷰가 모두 끝난 다음, 조은별 활동가가 이 질문에 대해 또 다른 의견을 덧붙였다)
가장 먼저, 우리가 어떤 미래를 향해 가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지고 있음을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꾸준하게 이야기해 왔지만, 최근 정부가 탄소중립을 선언하기 전까지는 대부분 기후변화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먼저 나서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이야기 하니 움직이지 않던 산업계부터 일반 시민들까지 모두 기후위기를 인정하게 되었죠. 이렇게 국가의 중심인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 관점을 바꾸는 것은 분명 큰 효과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이 무엇인지 먼저 인식하고 공표하여 정부기관, 산업계, 학계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앞으로 올 기후위기의 피해에 대비할 수 있게 해야합니다. 그래야만 질문주신 식량부족 문제, 에너지 공급의 문제에 대한 안전망을 조금이나마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근에는 가덕도 신공항 관련 문제를 제기해 주목을 받기도 했죠. 환경적으로도, 또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인데요 새로운 공항은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는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이은호) 자세하고 전문적인 문제점들은 국토교통부에서 국회 상임위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시면 잘 나와 있습니다. 안정성, 시공성, 운영성, 환경성, 경제성 등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어요. 저희는 여기에 핵심적인 반대 이유가 빠져 있다고 생각해요. 바로 기후위기 시대에 신공항을 짓는다는 계획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인데요. 많이 알려진 것처럼 비행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도 많지만, 규모가 큰 토건산업이기에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도 탄소배출이 커질 수밖에 없어요.
결국 기후위기를 가속환다고 보시는건가요
여러분이 기업인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얘기, 그리고 정치인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얘기는 각각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일단 정신 차리라는 얘기부터 해주고 싶네요(웃음) 기업인들에게는 기후위기 시대에 경제적으로 생존하려면 다배출 기업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의 세상은 그렇지 않겠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기업들이 ESG를 내세우면서 정작 실천은 개인에게만 맡겨두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우리는 온실가스를 줄이는게 진정한 ESG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정치인들 역시 긴장해야 합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없으면 집권하지 못할거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우리는 모든 수를 동원해서 끝까지, 그런 세상을 위해 힘쓸겁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강력한 녹색정치를 펼치는 후보가 당선되는 사례도 있고요.
환경단체 등 '환경운동가'중에도 여러분보다 선배 세대들이 많죠. 같은 주제를 얘기하지만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어쩔 수 없이 '세대 차'가 존재하는 선배들일 텐데요. 혹시 그런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없나요
(이은호) 일단 같이 직접행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영국 멸종저항, 멸종반란 운동을 보면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직접행동 하고 많이 연행되시거든요. 중년기후긴급행동, 노년긴급행동 만들어서 많이많이 연행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에는, 과거에 환경운동 진영에서 해오던 것보다 좀 더 확대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플라스틱 줄이기는 정말 중요하지만, 온실가스 배출 곧 탄소배출을 줄여서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할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물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운동을 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기후위기 시대에는 우리의 활동이 기후위기 대응, 나아가 기후정의 실현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새롭게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혼자 하기 어려우면 서로 힘 합치기도 하고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청년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죠. '우리 미래가 석탄보다 깜깜하다'라는 주장도 하셨잖아요. 청년 세대로서, 이런 간극이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나요
(강은빈) '경제성장은 그만 말하고 이제 지구의 한계를 직면하자'고 주장하면, 간혹 배부른 소리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잘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경쟁할 수 밖에 없고,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할 수밖에 없고, 환경오염도 불가피하다고 말합니다. 전쟁도 가난도 겪지 않은 2030 청년들은 앞으로도 지구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후변화를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고 여기는 반면, 기성세대들은 기후변화는 불가피한 결과이거나, 나중에나 해결해야 할 먼 얘기로 인식하는 데에서 그 절망의 간극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