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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태국 국왕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조롱한 적이 있다?

  • 작성자: 박자경
  • 작성일: 2023.11.08. 14:37
  • 조회수: 310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영상 콘텐츠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러한 역사 콘텐츠는 흥미로우면서도 유익한 지식을 담고 있어 큰 인기를 끌곤 합니다. 그러나 허위정보를 역사적 사실인 양 소개하는 콘텐츠도 덩달아 범람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콘텐츠는 특정인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피해를 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 더욱 큰 문제가 됩니다. 오늘은 ‘박정희 심기를 건드린 태국 국왕!! 마지막 순간’(아카이브)이라는 제목으로 115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유튜브 쇼츠 영상을 K.F.C.에서 팩트체크해봤습니다.

 

국가 간 혐오 정서로 이어질 수 있는 영상의 내용

먼저 영상 내용을 정리해볼까요? 해당 영상은 태국을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태국 국왕 간의 대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화면에는 태국과 상관없는 박 전 대통령의 사진이 연달아 나오고, 구체적인 내용은 자막과 내레이션을 통해 제시됩니다. 자막의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구두점은 필자가 추가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건드린 태국 국왕의 최후가 실시간 화제입니다. 1980년 5월 23일 태국 방콕으로 출국한 박정희 대통령은 국빈 자격으로 태국 국왕을 만났습니다. 박정희를 처음 본 태국 국왕은 비록 작은 키의 사나이였지만 그 강렬한 인상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말합니다. 사나이 박정희에게 괜히 남자대 남자로 시비를 걸기 위해 “한국이 태국보다 훨씬 못 사는 국가인데 대통령 전용기는 태국보다 비싼걸 구매하셨네요”라며 박정희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박정희는 이에 지지 않고 작심 발언을 내뱉습니다. “당연히 지금은 태국보다 한국이 못 살지만 30년 이내로 태국보다 훨씬 잘 사는 국가가 될 테니까요. 내 후임 대통령들이 외국에 나갈때 잘사는 한국을 대표할 거기에 비싼 전용기를 타는 것이죠” 라고 답했습니다. 당황한 태국 국왕은 박정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매우 예의가 없는 사람이다. 어떻게 한 나라의 국왕인 나한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냐며 박정희 앞에서 대놓고 비난했습니다.

정리해보면, 태국 국왕이 박 전 대통령에게 한국의 경제적 상황에 맞지 않는 전용기를 사용한다며 조롱하자 박 전 대통령이 단호하게 반박했다는 내용입니다. 양국 정상이 공격적인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만큼 시청자가 상대 국가에 대한 혐오 정서를 갖게 될 우려가 있는 영상입니다. 과연 영상 속 내용이 사실일까요?

 

애초부터 불가능한 영상 속 대화

영상은 시작부터 대화가 이루어진 시공간적 정보를 명확히 제시합니다. 자막에 따르면 1980년 5월 23일 태국의 방콕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태국 국왕이 만난 것인데요. 뭔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에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영상 속 ‘박정희 대통령’이 대한민국에서 5~9대 대통령을 지냈던 인물을 지칭하는 것이 맞다면, 해당 영상 속의 대화는 애초부터 성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실제로 태국을 방문한 것은 1966년이었습니다. 역대 대통령의 해외 순방과 관련된 자료는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대통령 기록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곳에서 공개하고 있는 해외순방 자료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의 태국 방문은 말레이시아, 태국, 자유중국(현 대만) 3개국을 연이어 방문하는 동남아시아 순방이 유일합니다. 구체적으로 박 전 대통령이 부미폴 아둔야데트 당시 태국 국왕을 접견한 일자는 1966년 2월 11일이었습니다. 영상 속에서 제시한 1980년 5월 23일과는 14년이나 차이 나는 일자입니다. 

출처: 대통령 기록관 일정일지기록

 

박정희 대통령은 전용기를 타고 태국을 방문했는가?

영상에서 태국 국왕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비싼 전용기’를 문제삼았습니다. 그렇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어떤 비행기를 타고 태국을 방문했을까요?

우선 박정희 대통령이 사용한 전용기와 관련된 정보부터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구체적인 정보를 찾을 수는 없었는데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페이스북을 확인한 결과 경남 사천항공우주박물관에 미군 수송기 C-54를 개조해 만들어진 전용기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천항공우주박물관에 있는 C-54는 대통령 전용기 전시관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가족 찬양’ 논란이 일었는데요. 당시 관련 보도를 한 경향신문에 실린 박물관 홈페이지 캡쳐 자료를 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해당 전용기를 사용한 것은 1969년부터 1973년까지였습니다. 같은 내용은 2014년 작성된 디펜스 뉴스의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고, 비교적 최근인 2020년 박물관을 방문한 개인의 블로그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공식적인 자료는 아니지만 언론 보도와 박물관 현장을 촬영한 사진 등을 확인해봤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1966년 태국을 방문하며 C-54를 개조한 전용기를 탔을 가능성은 낮아보입니다.

그렇다면 태국 방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실제로 사용했던 비행기는 무엇일까요? 대통령 기록관에서는 이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1966년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은 동남아 3개국(태국 포함) 방문 당시 독일 항공사 ‘루프트 한자’의 비행기인 보잉 707-4 발제트를 전세내어 탑승했습니다.

출처: 중앙일보

대통령이 태국 방문당시 사용했던 비행기가 루프트한자의 ‘보잉 707-4 발제트’라는 단서는 과거 대한뉴스 영상을 제공하는 유튜브  ‘KTV 아카이브’ 영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1966년 2월 17일 대한뉴스를 보면  ‘보잉 707’, ‘LUFT’ 등의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박정희 대통령은 태국을 방문할 때 전용기를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출처: 대한뉴스 제 558호

 

박정희 방문 후 태국 국왕이 보낸 우호적 인사서한 존재

박정희 대통령이 전용기를 이용하지 않았더라도 해당 대화가 실제 두 정상 사이에 오갔을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는데요. 정부 문서 혹은 언론 보도에서 태국 국왕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비싼 전용기를 이유로 비방했다는 내용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두 정상간의 대담은 기밀로 취급되기에 공개된 내용을 찾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K.F.C.는 다른 방식으로 검증을 진행했습니다.

양국의 정상이 대담을 나눈 후 협상에 실패하거나 서로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친서 등 우호적인 문서를 남기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있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기억하시죠? 당시 두 정상은 첫날 악수를 하는 사진을 찍고 대담과 저녁 식사까지 함께 했지만 둘째날 급작스레 회담을 종료했습니다. 이후 양국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1966년 한국과 태국은 어땠을까요? 외교문서 공개본, 발간자료 등을 공개해 제공하는 외교부의 LOD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박정희 대통령 동남아 및 중국 순방, 1966.2.7-18. 전4권 태국 방문’이란 자료를 찾을 수 있었는데요. 해당 자료에는 “한ㆍ태 양국은 2.13. 발표한 공동성명서에서 양국간 현존하는 우호적인 유대가 지난 수년간 한층 공

고하게 된 데 만족을 표시하고, 공동목표인 자유, 정의, 번영에 입각한 확고하고 항구적인 평화의 구축을 위하여 상호 긴밀하게 협조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밝힘”이라는 대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태국 방문후 인사서한’

이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놓은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에서도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있었는데요. 1966년 4월 7일 생산된 것으로 기록된 ‘태국 방문후 인사서한’을 보면 대국 국왕이 “각하의 1966년 2월 26일부 서한을 받게 된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읍니다”, “본인과 태국국민들은 각하와 육 여사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한국민의 계속적인 번영을 축원합니다” 등의 내용을 담은 인사서한을 보낸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외교적 관행과 남아있는 자료들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태국 방문 이후 양국의 관계가 우호적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판정결과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 태국을 방문했고, 전용기가 아닌 독일 항공사의 비행기를 이용했습니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이 1980년 5월 23일 태국 방콕으로 출국했다’는 영상의 내용과 영상을 통해 추정할 수 있는 ‘박정희 대통령이 전용기를 타고 태국을 방문했다’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다만 위 진술문의 판정 결과와 별개로, ‘‘한국의 경제 상황에 맞지 않는 비싼 전용기를 샀다”와 같이 태국 국왕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팩트체커들의 판정 결과가 달랐습니다. 각 팩트체커의 판정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수호: 박정희 대통령이 태국 국왕과 나눴던 대화의 구체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태국 국왕이 보낸 인사서한의 내용이 우호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둘 간에 공격적인 대화가 오고갔을 개연성이 적습니다. 만약 태국 국왕이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면, 오히려 한국 측에서 이를 문제시하거나 구체적인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관련된 기록을 찾기 힘들다는 사실 자체가 모욕적 언사가 없었음을 방증하는 근거가 됩니다. 이를 종합해보면 상기한 진술문이 거짓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대체로 사실이 아님으로 판정합니다.

자경: 영상 속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태국 국왕의 사적인 대화 내용에 대한 어떤 출처나 자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 그러한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는데요. 태국 국왕이 보낸 친서를 통해 우호적인 대화가 오고 갔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을 뿐입니다.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할 수 없어 검증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판단 유보로 판정합니다.

 

*이 결과물은 시민 협업 팩트체크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K.F.C.(Korean Factcheckers’ Community)의  바다, 정기훈, 수호, 박자경, 김예린 시민팩트체커의 협업으로 작성됐습니다.

**이 결과물을 비롯해 더 많은 검증 결과물은 K.F.C.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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